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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

존 갈리아노, 천재적인 재능의 디자이너

패션을 전공으로 선택했을 때 가장 존경하는 디자이너이자 롤 모델을 꼽으라면 그때 당시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존 갈리아노를 꼽았습니다. 매 컬렉션마다 특별한 디자이너 엔딩 인사를 하던 그의 모습은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스스로 그 컬렉션 컨셉의 아이콘이 되었던, 스타성을 숨길수 없었던 그. 오랜기간 그 자리를 지키던 그는 반유대주의 발언을 계기로 디올과 가차없는 이별을 경험하게 되었고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의 일대기를 포스팅하며 왜 그의 디자인을 사랑했었는지를 상기해보고자 합니다.

존갈리아노를 알며 가장 처음 인상깊었던 것은 그의 세인트 마틴의 졸업패션쇼였습니다. 프랑스대혁명에서 영감을 받은 그의 옷들은 지금봐도 아름답습니다. 세인트마틴을 수석졸업하고 그와 동시에 업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바로 자신의 브랜드를 런칭하여 84년부터 89년까지 런던 컬렉션에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사업적인 재능은 없었나봅니다. 기대에 대한 부담과 압박, 재정적 문제등으로 인해 그의 레이블은 파산위기에 처하는 등의 위기가 있었습니다. 파리 패션위크로 진출하고도 재정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그는 안나윈투어와의 만남으로 숨통이 트였고, 이후 지방시의 수석 디자이너가 되고 1997년에는 크리스찬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었습니다. 

안나윈투어와의 만남이후로 특유의 스타성으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2011년 파리의 한 술집에서 반유대주의 발언을 하는것이 영상으로 찍히면서 논란의 중심이 되었고, 이 후 바로 디올의 크리에이티브자리에서 해임되면서 몰락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동양인 차별 발언도 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정확한 근거는 없다고 합니다. 알코올 중독 문제로 치료받기도 했습니다. 모든 분야가 그렇겠지만, 패션계에서도 인종차별, 유대인 모욕은 아주 민감한 사안으로 그의 재기가 쉽지만은 않을거라고 예상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디올컬렉션인 2011/2012 fw 디올 프레타포르테 컬렉션은 시그니처같았던 갈리아노의 캣워크가 생략되었고 디올 디자인팀 전원이 피날레를 장식하였습니다.

그리고 2년후, 안나 윈투어의 요청(?)으로 '오스카 드 라 렌타'의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잠시 일하며 패션계로의 복귀 신호를 알렸습니다. 안나윈투어는 그가 힘들때마다 등장하는 귀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 후 2014년 10월 6일, 메종 마르지엘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복귀하게 되었고 9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사실 몰락이라기엔 복귀가 빠르긴 했습니다. 잠시 주춤했다고 표현하는게 더 적절하겠네요.

존 갈리아노의 디자인은 복잡하고 호화로운 디테일, 연극과 같은 특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디자인은 종종 연극과 공연적 요소를 포함합니다. 그는 한편의 쇼를 보는 듯한 런웨이를 만드는 것으로 잘 알려져있었습니다. 메종 마르지엘라의 22년 fw 컬렉션은 마치 프랑스 명화를 움직이는 동영상으로 보는듯한 느낌을 주기도 했습니다. 물론 최근 런웨이들은 쇼적인 요소를 포함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 시절 갈리아노는 독보적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실험적인 디자인을 선보였습니다. 새로운 직물, 실루엣, 소재를 실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디자이너였습니다.  세밀한 디테일, 화려하고 다양하지만 유치하지 않은 컬러, 그리고 재치있는 위트까지. 전반적으로 존 갈리아노의 디자인은 혁신, 장난기, 디테일에 대한 그의 관심이 특징입니다. 

그의 작품을 계속해서 볼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세상엔 왜 이렇게 천재가 많은건지, 항상 약간의 질투와 동경이 함께하는 복잠한 심경을 가지고 그들의 작품을 감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