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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

마틴마르지엘라, 그가 미디어 노출을 꺼렸던 이유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하지만 그 누구도 얼굴을 알 수 없는 것이 가능할까요?

예술계에는 이를 실현한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패션계의 대표적인 얼굴없는 디자이너는 마틴 마르지엘라입니다. 패션의 '해체주의'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라고 할 수있습니다. 현재는 구글 검색이 발달하면서 얼굴이 알려졌지만 87년에 본인 이름을 건 브랜드를 만들고 은퇴하는 2008년까지 얼굴을 밝히는걸 극도로 꺼리며 얼굴을 숨겼습니다.

벨기에 앤트워프왕립예술학교를 세계적인 패션 명문으로 만든 디자이너 중 하나가 아닐까요. 세계 패션 명문학교들을 소재로 글을 써도 재미있을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마르지엘라는 학교를 졸업하고 장폴고티에 아뜰리에에서 3년정도 일합니다. 87년에 자신의 브랜드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를 설립합니다.

패션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해체주의하면 마틴 마르지엘라를 떠올릴 것 입니다. 해체주의는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철학으로, 예술과 디자인에서 아름다움과 형태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에 도전했습니다. 패션에서 해체주의라함은 전통적인 의복의 구조나 고정된 실루엣에서 벗어나고, 성별의 규정과 같은 패션의 관습에 도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마르지엘라는 해체주의에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그는 패션계에 해체주의라는 개념을 대중화한 것으로 인정받는 디자이너입니다. 그는 전통적인 의복 제작방법에 대한 도전으로 노출된 솔기, 비대칭적인 모양, 밖으로 드러난 시침선 등을 이용했습니다. 그는 또한 의복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에 도전하기도 했습니다.

마르지엘라의 디자인은 오버사이즈, 과장된 실루엣을 특징으로 하며 이는 의상에 볼륨감과 움직임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렇게 패션계에 큰 영감을 주는 디자이너 마르지엘라는 언론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기로 유명했습니다. 이전 포스팅에 다뤘던 존갈리아노는 피날레에 멋지게 등장하며 자신을 컬렉션의 한 부분으로 만들어 돋보이게 한 것과는 아주 상반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행동에대한 이유는 몇가지가 있었는데 무엇보다도 옷에 집중하라는 의도가 가장 컸던 것으로 해석됩니다. 마르지엘라는 패션은 디자이너가 아니라 옷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디자인이 자신을 표현해주기를 원했고, 자신보다는 옷에 초점을 맞춰주기를 원했습니다. 또한 마르지엘라는 패션 산업의 유명인사, 명성에 대한 집착에 비판적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패션계의 아웃사이더로 여겼습니다. 마르지엘라는 미디어를 피하는 것이 그의 디자인 작업에 있어서 더욱 창조적인 자유를 가질수 있게한다고 믿었습니다. 미디어로 유명해진다면 자연스럽게 상업적인 기대에 부응하거나 그 동향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믿었던 것이죠. 그 스스로 돋보이기를 거부한 것은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의 디자인이 그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팀의 협업의 결과물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신념덕분에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컬렉션을 거침없이 내놓을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그이러한 아웃사이더적이고 은둔하는 그의 성향은 그를 더욱 신비로운 디자이너로 만들어줬습니다. 마르지엘라는 실존하는 사람이긴 한것인가 하는 신비감을 주었죠. 에르메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한참을 활동하기도 했으니 당연히 그는 실존하는 아주 영향력있는 패션디자이너 입니다.

이렇게 열정적이고 패션에 대해 진지했던 그는 2008년 즈음 패션계를 떠나고자하는 의지를 보입니다. 후계자를 물색하기 시작했고 그의 가까운 동료들은 '그가 패션계의 끈질긴 눈부심 밖에서 자신의 삶을 즐기고 싶어하는 듯하다'라고 추측하기도 했습니다. 2009년 12월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레이블을 공식적으로 떠났고 현재는 그의 예술성을 패션이 아닌 예술작품으로 표출하고 있습니다. 2021년 10월에 공식적으로 데뷔하였고 첫 개인전에 40여개의 작품을 내놓았습니다. 화려한 패션계를 떠나 그는 이제 여유롭고 편안한 생활을 즐기고 있을까요?

57년생인 마르지엘라는 60을 넘은 나이입니다. 패션계에 한 획을 긋고 은퇴 후 예술가로서의 삶을 사는 그는 저에게 많은 영감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