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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

마크 제이콥스, 디자인과 기능의 균형 그리고 브랜딩

패션의 가치는 여러가지로 정의할 수 있지만, 사실 순수 예술 보다는 상업에 가까운것이 패션입니다. 팔리지 않고, 사람들이 입지 않는 옷은 옷으로싸의 가치는 떨어집니다. 입지 못하는 옷이 의미가 있을까요? 물론 럭셔리 패션하우스에서 쏟아내는 아방가르드한 컬렉션들은 그 자체로 각광받지만 사실상 그 브랜드의 수익을 책임지는 것은 일반인들이 구매하는 프레타포르테, 즉 기성복일 것입니다.

세계 3대 패션스쿨이 있습니다. 뉴욕의 파슨스 디자인 스쿨, 영국의 센트럴 세인트 마틴, 벨기에의 앤트워프 왕립 예술학교. 주로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3대 패션 스쿨이라는 개념이긴 하지만, 해외에서도 명문 패션 스쿨을 이야기하면 이 세학교가 빠지지 않습니다. 그중에서도 파슨스 디자인 스쿨은 상업성을 최우선 가치로 둡니다. 마크제이콥스는 모교의 이러한 가치에 가장 적절했던 디자이너가 아닐까요

63년 생인 마크제이콥스는 97년부터 2013년까지 루이비통의 수석 디자이너로 일했으며, 본인의 이름을 딴 마크제이콥스와 마크바이마크제이콥스를 맡고있습니다. 

마크제이콥스는 루이비통 크리에이티브 재임기간 동안 브랜드의 성공에 상당한 기여를 했습니다. 요즘의 루이비통은 예술에 크게 관심을 가지며 많은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지만(최근 저작권 침해 문제로 고소를 당하긴 했지만서도) 사실 마크제이콥스 부임 이전에 루이비통은 팬시한 컨셉의 브랜드라기보다는 클래식한 느낌의 브랜드였습니다. 마크제이콥스가 루이비통에 미친 결정적 영향중 하나는 아티스트와의 협업입니다. 그는 타카시 무라카미, 스티븐 스프라우스, 리처드 프린스와 같은 예술가들과 함께 그들의 작품을 루이비통 가방에 접목시켜 한정판 컬렉션을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협업은 브랜드에 새로운 창의성을 더해 주었고 럭셔리 패션하우스들이 앞으로 나가야할 방향을 제시해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컬러 모노그램이 처음 나왔을때는 정말 충격적이었지요.

이런식으로 마크제이콥스는 루이비통이라는 브랜드 자체를 확장시켰습니다. 전통적인 모노그램 가죽제품을 넘어, 기성복 컬렉션, 신발, 보석 및 기타 악세서리를 출시하여 브랜드 제품을 다양화 시키고 광범위한 고객들에게 어필하게 되었습니다. 엄마 가방을 넘어서서 젊은 층에게도 트렌디함을 어필하게 됐던게 마크제이콥스의 시절이었습니다. 루이비통의 상징적 디자인도 만들어냈습니다. 그래피티, 모노그래머플라즈(monogramouflage), 체리블라섬(cherryblossom), 스프라우스 가방, 탬버시계 등의 디자인을 창조해냈고 이는 이제 클래식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높은 인기를 얻고 있지요.

또한 그는 '잇백'의 개념을 만들었습니다. 잇백은 고가 브랜드의 베스트셀러를 뜻하는 단어로 루이비통의 스피디와 네버풀은 마크제이콥스의 시대에 가장 인기있는 잇백 중 하나였습니다.

루이비통에서의 자취만으로도 마크제이콥스가 패션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타 천재 디자이너들처럼 그는 혁신적인 디자인을 내놓고 패션에 대해서 파격적인 접근을 했습니다. 그러한 혁신에 그는 상업성까지 중요시하며 어떻게 하면 패션브랜드가 고리타분해지지 않으면서 수익까지 올릴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내놓았습니다.

그의 또다른 핵심 디자인 가치는 패션과 기능의 균형을 맞추는 능력입니다. 그의 컬렉션은 디자인적으로 훌륭함은 물론이고 실용적이고 착용감이 뛰어나 패션업계 관계자는 물론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인기가 높습니다. 그는 스타일리시하면서도 편안한 룩을 만드는 안목이 있어 고객들이 편하면서도 패셔너블한 스타일을 표현할 수 있는 디자인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브랜딩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합니다. 브랜드 이름을 들으면 딱 떠오를 상직적 디자인을 만들어 내는것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마크제이콥스의 천재성은 그의 창의적인 비전, 혁신, 과감함, 브랜딩의 조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패션산업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고 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있는 패션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