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의 이야기

피비 파일로, 미니멀리즘과 실용적인 우아함

패션학도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는 순간이 있습니다. 컬렉션을 마치고 모델들이 단체로 런웨이를 한 바퀴 돌고 나간 뒤, 홀로 조용히 백스테이지에서 런웨이로 등장해 "제가 이 컬렉션을 주도해서 만들었어요 제 옷들입니다"하며 인사하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쿨한 디자이너의 모습. 패션이라는 산업에 몸 담기로 마음먹은 이는 누구나 상상해 볼만한 장면입니다. 저에게 가장 이상적인 피날레 인사는 피비 파일로였습니다.

목티에 머리카락 넣은 것마저도 시크 그 자체.

피비 파일로는 엄청난 디자이너임에도 틀림없지만 저에게는 스타일과 패션의 아이콘이었습니다. 영국 디자이너이지만 어디선가 모르게 풍기는 프렌치 시크.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영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고 2살부터는 영국에 쭉 살고 학교도 센트럴 세인트 마틴을 나온 그녀에겐 왠지 모를 파리지앵을 느낌이 납니다. 그래서인지 피비 파일로는 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 브랜드인 끌로에에서 경력을 시작해서 후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어 매출을 끌어올린 뒤 잠시 휴식기를 가지다가 다시 프랑스 브랜드인 셀린느에서 10년이라는 시간을 크리에이티브로 재임합니다. 2008년부터 2018년까지 피비 파일로의 크리에이티브 시절은 셀린느라는 브랜드에 변화를 주는 기간이었습니다. 그녀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취임했을 때 셀린은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명품 브랜드였지만, 그녀의 지도 아래, 셀린느는 실용적이면서 우아한 영향력 있는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2009년 당시 셀린느를 따라 하는 수많은 브랜드들이 생겼고 셀린다움(celinisation)이라는 단어가 등장할 정도로 성공적이었습니다.

피비의 미니멀리즘과 절제된 우아함은 브랜드에 완벽하게 어울렸고, 실용적이고 아름다운 디자인을 만드는 능력으로 빠르게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녀는 고급스럽고 절제된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 고품질의 소재와 세밀한 디테일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녀의 디자인은 깔끔한 라인, 뮤트 한 컬러, 텍스처와 비율에 초점을 둡니다. "시대를 초월하고 유행을 타지 않는 것"을 만들겠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 더욱 인정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피비 파일로는 그녀의 미니멀리즘 미학 외에도 예술, 건축, 자연계를 포함한 다양한 곳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또한 헬무트랭과 질샌더와 같은 디자이너들의 작업이 그녀 자신의 디자인 접근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고 언급했습니다. 

셀린느에서 일하는 동안 그녀는 트라페즈 가방, 러기지 토트, 필로 시대 셀린느 로고를 포함하여 브랜드와 동의어가 된 많은 상징적인 디자인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녀의 컬렉션은 고급스러운 재료의 사용, 흠잡을 데 없는 재단, 디테일로 찬사를 받았습니다. 셀린느에 대한 그녀의 영향력은 옷뿐만 아니라 미니멀리즘 미학을 특징으로 하면서 종종 강하고 독립정인 여성상을 모델로 내세운 브랜드의 매장 디자인과 광고 캠페인을 감독하면서 확장되었습니다. 

전반적으로 피비 파일로와 셀린느의 관계는 매우 성곡적이었고 셀린느라는 브랜드가 지금의 인지도나 브랜드 이미지를 가지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2018년 그녀가 브랜드를 떠났을 때 많은 팬들과 패션업계 전체가 아쉬워했고, 그 영향력은 퇴임 이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에디 슬리먼의 셀린은 뉴셀린, 피비파일로의 셀린은 올드 셀린으로 불리며 그 가치가 폭등하며 여전한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Timeless, not trendy.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 피비 파일로 시절의 셀린느를 보아도 여전히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걸 보면 그녀의 신념을 제대로 지켜낸 것 같습니다. 너무 빠르게 유행이 돌고 도는 요즈음을 바라보고 있으면, 시대를 초월하고 유행을 타지 않는다는 건 모든 브랜드들이 지향해야 할 가치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