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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

코코 샤넬, 여성패션의 혁명가이자 재판 받지 않은 전범

사람들이 열광하는 브랜드들이 있습니다. 이런 브랜드들은 시대에 따라 유행에 따라 자주 바뀌고, 반짝 떴다가 사라지기도 하며 간혹 브랜드 이미지가 소모되어서 과거에는 하이패션 브랜드로 각광받던 브랜드들이 가치가 뚝 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한, 최소한 21세기의 샤넬은 브랜드 가치가 떨어졌던 기간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항상 올라갔고, 요즘은 천만 원을 호가하는 가방을 내놓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오픈런을 감수해 가면서 샤넬백을 사러 다닙니다. 하얀 꽃이 달린 까만 종이가방을 들고 백화점을 나서는 것은 여성들의 로망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상에 부정적은 견해를 보이는 사람들도 많지만, 경제력이 된다면 샤넬제품을 마다할 사람은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80, 90년대 무드가 사랑받는 시대에 샤넬의 클래식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은 사람들의 열광을 받기에 충분하지요.

이러한 브랜드 샤넬을 만든 가브리엘 샤넬은 어떤 사람일까요? 

 

 

코코 샤넬이라고 잘 알려진 가브리엘 샤넬은 1883년 프랑스에서 태어났습니다. 키 169에 늘씬하고 매력적인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린시절 고아원에 맡겨집니다. 이러한 시절을 극복하고 여성복에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의 발전을 이루어 냅니다. 현대 여성복의 시초 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패션은 편안해야 하고 여성들은 그들의 옷을 입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디자인적 가치로 당시 치마만 입어야 하고 코르셋을 착용해야 했던 여성패션은 팬츠를 도입하게 됩니다. 또한 깔끔한 선과 최소한의 장식을 사용하면서 미니멀한 디자인을 추구했습니다. 코코는 덜어내는 것이 더욱 훌륭하고 심플함이 우아함의 열쇠라고 믿었습니다. 샤넬은 패션 트렌드의 변덕에 영향을 받지 않고 시대의 흐름을 견뎌낼 수 있는 디자인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그녀는 앞으로 수년간 입 을수 있는 클래식하고 유행을 타지 않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실용적인 옷을 디자인했습니다. 그녀는 패션이 목적에 부합해야 하고, 옷을 입는 사람의 필요에 맞게 디자인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샤넬은 장신정신과 소재에 높은 가치를 두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잘 만들어진 고품질의 의류가 투자할 가치가 있고, 저품질 의류보다 더 오래 지속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성들이 샤넬의 옷을 선택함으로써 그들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녀는 패션이 유니폼이 아니라 여성이 그들의 독특한 개성과 스타일을 표현하는 방법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디자인적 가치를 추구한 결과로 그녀는 시대를 초월한 아이템들을 창조해 낼 수 있었습니다. 샤넬이 최초로 만들어낸 여성복 아이템들이 꽤 있는데 그 중하 나는 리틀 블랙 드레스입니다. 1926년 샤넬은 'Little Black Dress를 미국판 보그에서 최초로 소개했는데 LBD라고 불리며 20년대 진취적인 여성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또 1920년대에 braid trimming디테일에 깃이 없는 재킷과 딱 붙는 스커트로 구성된 샤넬정장을 선보였습니다. 그것은 그 시대의 무겁고 불편한 옷에서 벗어난 것이었고 빠르게 세련도니과 우아함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1950년대에는 마구간 소년들이 입는 재킷에서 영감을 받아 누빔 핸드백을 선보였습니다. 이 가방은 어깨에 걸칠 수 있는 체인 스트랩이 있어 스타일리시하면서도 실용적으로 디자인되었습니다. 이게 바로 요즘 없어서 못 구한다는 샤넬 가방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샤넬은 실용적이고 자유로운 여성 패션과 당시 화려한 장식의 옷들에서 벗어난 미니멀리즘의 수용한 디자인, 바지대중화, 여성의복에 남성의류 소재 사용, 시대를 초월한 디자인 등, 패션계에 엄청난 업적을 남겼습니다. 사실상 여성 패션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업적을 남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에도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고 샤넬의 올드한 빈티지들도 고가에 거래되는 등 여전히 사랑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샤넬은 아이러니하게도 본국 프랑스에서 '재판받지 않은 전범'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제 2차 세계 대전 동안 나치 장교들과의 관계와 독일의 프랑스 점령에 대한 그녀의 협력을 비판합니다. 구글에 코코샤넬을 검색하면 직업에 '전범'이라는 글자가 뜹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와 히틀러 지지 사실이 알려지고나서 많은 비판을 받았고 유대인이었던 동업자를 사업에서 퇴출시키려 했고, 전쟁기간 동안 나치 고위층과 친분을 유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형당하기 일보직전의 위기에서 과거 애인의 가까운 친구인 처칠의 도움으로 풀려났고 스위스로 도피 후 10년간 프랑스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사업 관행과 직원들에 대한 대우 또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노동자의 인권에는 관심도 없었고 사생활은 매우 복잡했으며 대부분의 패션디자이너들을 비판하면서 사이도 좋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전범이라는 이유로 죽어서도 프랑스에 묻히지 못했습니다. 

패션계에 그녀의 기여는 아주 분명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역사적 관점에서는 결코 그녀에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는 없겠습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친일 행각을 벌이던 사람이 차린 브랜드에 줄을 서서 가방을 사는 격이니까요. 우리나라의 일제강점기라는 아팠던 과거를 세계에서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정작 우리는 전범이 만든 브랜드의 가방을 거금을 들여서 줄까지 서가면서 사는 것이 참 아이러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