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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

나쁜 그림, 나를 매혹시키는 그림은 어떤 그림인가.

미대를 나왔고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사실 미술사나 순수 미술작품에 대해서는 깊이 알지 못합니다. 관심은 있지만 알고자 하면 공부처럼 느껴져서 금방 흥미를 잃곤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일하는 데 있어서 영감을 받거나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데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고 이 슬럼프를 빠져나갈 방법 중 하나로 순수 미술에 대한 탐구 결심했습니다. 일단 시작은 재미있게 접근하는 것이 목표였고 그래서 일단 시작하기로 한 것이 집 책꽂이 꽂혀있던 책 중 하나인 '나쁜 그림'을 읽어 보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나쁜 어떤 것에 끌리기 마련입니다. 알면서도 나쁜 남자, 나쁜 여자에게 매력을 느끼고, 몸에 좋지 않은 음식들은 특히나 더 맛있습니다. 어릴 적 부모님이 하지 말라는 행동에 더 관심이 가기도 하고, 또 사람들은 좋은 뉴스보다는 나쁜 뉴스를 더 관심 있게 봅니다. 어쩌면 금단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조금은 어렵고 지겨울 수 있는 순수 미술 작품들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책의 목차만 봐도 흥미로는 단어 투성이입니다. 탐닉, 욕망, 집착, 공포, 무지, 노출, 자기애 등 평소에 입에 담기 힘든 자극적인 단어들로 그림에 대한 관심을 유발합니다. 그저 귀족들의 고상 떠는 유희 정도로만 생각했던 서양화에 이러한 자극적인 주제들이 숨어있었다는 사실이 흥미진진하게 와닿습니다. 

나쁜 그림 - 저자 유경희

 

책은 '차마 드러내어 말하지 못한 것들, 당신도 모르게 눈이 가는 그림들, 욕망할수록 가질 수 없는 삶' 이렇게 총 세 파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성의 나체나 쟁반 위에 얹어진 머리, 칼 등 자극적인 그림들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저 자극적이지만은 않은 숨겨진 의미와 그 스토리에 대해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순식간에 책장을 넘기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책의 표지는 고디바부인입니다. 남편인 영주의 가혹함에 백성들이 고통에 시달리자 "세금을 내리지 않으면 나체로 말을 타고 시내를 돌아다니겠다"라고 말했고, 영주는 화를 내며 시장을 돌아다니면 청을 들어주겠다고 합니다. 고디바는 백성들을 위해 정말 나체로 집을 나섰고 백성들은 그런 그녀를 위해 모두 커튼을 내리고 문을 걸어 잠갔지만, 그중에 금기를 어긴 재단사 톰으로 인해 '피핑톰'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는 훈훈하면서 약간의 교양 지식도 얻을 수 있는 스토리를 가진 그림입니다. 그저 발가벗은 여성이 말을 타고 지나가는 모습을 아름답다고만 생각하고 지나갔을지도 모르는 그림이지만 그 숨겨진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어떻게 화가가 고디바부인을 이렇게 아름답게 그릴 수 있었는지도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행동이 고귀했기에 이 그림 또한 이리도 아름답게 그려진 게 아닐까요?

고디바 부인을 포함하여 이 책 속 그림의 주인공들은 살로메, 다나에, 비너스, 판도라 등 대부분 여성들입니다. 실제로 서문에서도 등장하듯 책 제목은 나쁜 그림이지만 서양화 속에 등장하는 '나쁜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이라고 합니다. 그 당시 그림을 그리던 화가들이 대부분 남자였기 때문에 '악녀'에 대한 그림이 많았던 것이 아닐까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해 봅니다. 

요즈음 인기있는 드라마 속 등장인물 '연진이'처럼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겉으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착한 여자보다는 나쁜 여자에게 한 번 더 관심을 주기 마련인가 봅니다. 실제로 저는 드라마 글로리를 보지 않았는데, 드라마 속 주인공 이름은 모르지만 그녀의 복수의 대상인 '연진이'의 이름은 알 고 있으니까요. 미술에 관심이 있다면, 자극적인 미술의 세계가 궁금하다면 한 번쯤 읽어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