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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마르첼라 내가 이 드라마가 싫은 이유 스릴러, 추리, 수사물 드라마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 시리즈 추천글을 쓰고 싶었는데, 최근 넷플릭스에서 마르첼라를 보고 순간순간 스트레스를 받아서, 이 감정을 어디엔가 남겨야 스트레스가 풀릴 것 같아서 글을 써봅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보는 것을 고민 중입니다. 볼 게 없어서 틀어 놓고 있는데 다른 볼 것이 생기면 더 이상은 안 볼 것 같아요. 저의 드라마 취향은 셜록, 웬즈데이, 죄인, 마인드헌터, 너의 모든 것, 크리미널 마인드, 기묘한 이야기 등을 재밌게 봤습니다. 그 외에도 루시퍼는 시즌 초중반까지 잘 봤고 브로드처치, 크리미널 시리즈들도 꽤 재밌게 봤습니다. 해리포터를 엄청 좋아하지만 반지의 제왕은 별로 안 좋아했어요. INTP이라 상상하며 볼.. 더보기
피비 파일로, 미니멀리즘과 실용적인 우아함 패션학도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는 순간이 있습니다. 컬렉션을 마치고 모델들이 단체로 런웨이를 한 바퀴 돌고 나간 뒤, 홀로 조용히 백스테이지에서 런웨이로 등장해 "제가 이 컬렉션을 주도해서 만들었어요 제 옷들입니다"하며 인사하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쿨한 디자이너의 모습. 패션이라는 산업에 몸 담기로 마음먹은 이는 누구나 상상해 볼만한 장면입니다. 저에게 가장 이상적인 피날레 인사는 피비 파일로였습니다. 피비 파일로는 엄청난 디자이너임에도 틀림없지만 저에게는 스타일과 패션의 아이콘이었습니다. 영국 디자이너이지만 어디선가 모르게 풍기는 프렌치 시크.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영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고 2살부터는 영국에 쭉 살고 학교도 센트럴 세인트 마틴을 나온 그녀에겐 왠지 모를 파리지앵을 느.. 더보기
마크 제이콥스, 디자인과 기능의 균형 그리고 브랜딩 패션의 가치는 여러가지로 정의할 수 있지만, 사실 순수 예술 보다는 상업에 가까운것이 패션입니다. 팔리지 않고, 사람들이 입지 않는 옷은 옷으로싸의 가치는 떨어집니다. 입지 못하는 옷이 의미가 있을까요? 물론 럭셔리 패션하우스에서 쏟아내는 아방가르드한 컬렉션들은 그 자체로 각광받지만 사실상 그 브랜드의 수익을 책임지는 것은 일반인들이 구매하는 프레타포르테, 즉 기성복일 것입니다. 세계 3대 패션스쿨이 있습니다. 뉴욕의 파슨스 디자인 스쿨, 영국의 센트럴 세인트 마틴, 벨기에의 앤트워프 왕립 예술학교. 주로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3대 패션 스쿨이라는 개념이긴 하지만, 해외에서도 명문 패션 스쿨을 이야기하면 이 세학교가 빠지지 않습니다. 그중에서도 파슨스 디자인 스쿨은 상업성을 최우선 가치로 둡니다. 마크제이.. 더보기
마틴마르지엘라, 그가 미디어 노출을 꺼렸던 이유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하지만 그 누구도 얼굴을 알 수 없는 것이 가능할까요? 예술계에는 이를 실현한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패션계의 대표적인 얼굴없는 디자이너는 마틴 마르지엘라입니다. 패션의 '해체주의'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라고 할 수있습니다. 현재는 구글 검색이 발달하면서 얼굴이 알려졌지만 87년에 본인 이름을 건 브랜드를 만들고 은퇴하는 2008년까지 얼굴을 밝히는걸 극도로 꺼리며 얼굴을 숨겼습니다. 벨기에 앤트워프왕립예술학교를 세계적인 패션 명문으로 만든 디자이너 중 하나가 아닐까요. 세계 패션 명문학교들을 소재로 글을 써도 재미있을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마르지엘라는 학교를 졸업하고 장폴고티에 아뜰리에에서 3년정도 일합니다. 87년에 자신의 브랜드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를 설립합니다. .. 더보기
알렉산더 맥퀸, 혁신과 아방가르드 그리고 기술적 테일러링 영향력 있는 인물의 죽음은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줍니다. 2010년, 알렉산더 맥퀸은 40세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 당시 많은 패션계 인사들과 그의 지인, 유명인, 패션학도들에게 많은 충격을 안겨줬던 사건이었습니다. 저 또한 더이상 그의 인상적인 컬렉션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슬펐습니다. 그의 유작이된 마지막 컬렉션이 너무 아름다웠기때문에 더욱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알렉산더 맥퀸은 패션의 경계를 확장하는 극적이고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했습니다. 좋게 말하면 혁신이지만 혹자는 옷에 대한 모독이라며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한창 그의 전성기에 맥퀸은 '아방가르드'라는 단어의 상징같기도 했습니다. 그 정도로 그의 디자인은 파격적이고 전위적이며 때로는 논란의 여지가 있기도 했기때.. 더보기
존 갈리아노, 천재적인 재능의 디자이너 패션을 전공으로 선택했을 때 가장 존경하는 디자이너이자 롤 모델을 꼽으라면 그때 당시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존 갈리아노를 꼽았습니다. 매 컬렉션마다 특별한 디자이너 엔딩 인사를 하던 그의 모습은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스스로 그 컬렉션 컨셉의 아이콘이 되었던, 스타성을 숨길수 없었던 그. 오랜기간 그 자리를 지키던 그는 반유대주의 발언을 계기로 디올과 가차없는 이별을 경험하게 되었고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의 일대기를 포스팅하며 왜 그의 디자인을 사랑했었는지를 상기해보고자 합니다. 존갈리아노를 알며 가장 처음 인상깊었던 것은 그의 세인트 마틴의 졸업패션쇼였습니다. 프랑스대혁명에서 영감을 받은 그의 옷들은 지금봐도 아름답습니다. 세인트마틴을 수석졸업하고 그와 동시에 업계의 주목을 받았습니.. 더보기
비비안 웨스트우드 영국 펑크의 대표 디자이너 작년연말 패션계에 한획 이상의 일을 한 영국대표 디자이너 비비안웨스트우드가 사망했습니다. 행성모양의 오벌을 보면 떠오르는 브랜드 비비안 웨스트우드. 오늘은 그녀와 그 브랜드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비비안웨스트우드는 영국의 패션 디자이너로 펑크에서 영감을 받은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합니다. 그녀는 1941년 4월 8일 영국 더비셔에서 태어났습니다. 비비안웨스트우드는 1970년대에 런던의 펑크 록 장면을 위한 의상을 디자인하면서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초기 디자인에는 속박에서 영감을 받은 요서, 안전핀, 펑크 운동의 대명사가 된 타탄이 포함되었습니다. 이 후에 로코코, 아메리카 원주민, 해적 등에 영감을 받는 스타일과 같은 역사적, 문화적 요소를 디자인에 적용하기도 했습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패.. 더보기